처음 『트레인스포팅』을 보았을 때, 머릿속을 맴돈 감정은 '불쾌함'이었습니다. 아름답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청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오히려 그 불편함으로 제 안에 깊이 박혔습니다. 단순히 마약에 중독된 젊은이들의 일탈이라기보다는,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의 1996년 작품인 『트레인스포팅』은 스코틀랜드 청춘들의 방황과 절망을 거칠면서도 세련되게 묘사합니다. 유완 맥그리거를 비롯한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와 빠른 편집, 그리고 시대를 대변하는 음악까지 어우러지며 이 영화는 단순한 청춘영화 이상의 울림을 전합니다. 그들은 마약이라는 도피를 통해 현실을 외면하지만, 그 도피조차 결국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의 상실감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줄거리 요약 –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젊은이들
영화는 렌튼(유완 맥그리거)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뛰어난 지성과 냉소를 지녔지만, 마약에 중독되어 방황하는 청춘입니다. 그의 주변에는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베그비, 순수하지만 유약한 스퍼드, 그리고 각기 다른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처럼 붙어 다니지만, 실은 누구도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렌튼은 반복되는 마약 중독과 재활,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합니다. 상징적인 화장실 장면이나 아기 환각 장면 등은 관객에게 불쾌함을 선사하지만, 그 안에는 현실의 추악함을 그대로 직시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렌튼은 마지막 순간, “나는 선택할 것이다. 평범한 삶을.”이라고 선언하며 친구들을 배신하고 체제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선택이 과연 진정한 변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굴레에 불과한지는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트레인스포팅의 패션 – 캐릭터를 말해주는 스타일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패션’입니다. 트레인스포팅은 90년대 영국 스트리트 스타일과 하위문화 감성을 그대로 반영한 스타일링으로 패션계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작품입니다. 각 인물의 의상은 단순한 복장을 넘어 성격과 심리를 표현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렌튼의 무채색 티셔츠와 슬림 팬츠는 그의 무기력한 현실감과 냉소를 상징합니다. 어떤 꾸밈도 없는 그 복장은 자아를 숨기고 싶은 그의 태도를 반영합니다. 반면 스퍼드는 컬러풀한 패턴 셔츠와 괴짜 같은 조합을 통해 유쾌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베그비의 스타일은 정반대입니다. 타이트한 셔츠와 정장 스타일의 구두는 공격적인 남성성과 지배욕을 드러내며, 그는 마약은 하지 않지만 폭력에 중독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이처럼 영화 속 의상은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당시 사회 분위기와 청춘 문화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감상 – 왜 이 영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가
『트레인스포팅』은 끝나고 나서도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화려하거나 감동적인 장면은 거의 없지만, 오히려 그 날것의 리얼함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렌튼이 ‘평범한 삶’을 선택하겠다는 마지막 독백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현실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자아를 찾아가는 첫걸음이었는지… 쉽게 단정할 수 없었기에 더 여운이 컸습니다.
이 영화를 본 뒤, 저는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영국 사회와 청년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단순히 영화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와 고통을 들여다보는 창이 되어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겹쳐지기 때문에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결론 – 불편하지만, 진실했던 청춘의 초상
『트레인스포팅』은 청춘의 이상이나 낭만을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그 안에서 진실을 찾고자 합니다. 마약, 우정, 배신, 체제에 대한 회의, 그리고 결국 선택의 순간까지. 그 모든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결국 삶의 실체를 마주하게 만드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었는가? 그런 질문 앞에서 이 영화는 여전히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